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2025/03 9

대구 신천(대봉교 주변) 봄나들이

">   대구신천 수변화 사업의 일환으로 대봉교 주변을 집중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푸른 신천숲, 사계절 물놀이장, 리버뷰 테라스, 신천 수변공원화 사업을 통해 신천을 일상의 활력이 넘치는 도심생태공간으로 조성한다. ‘   리버뷰 테라스’는 대봉교 교량 아래 공간을 활용하여 신천을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 형태의 복합문화공간을 뜻하며, 이와 함께 2월 28일 신천 대봉교 하류쪽 좌안 둔치에서 신천 프러포즈 조성사업 기공식을 개최하여 2026년 4월 준공 예정이다.  ‘신천 프러포즈 조성사업’은 대봉교 하류 방향에 직경 45m의 원형 복층 구조의 데크 및 광장을 설치해 수상공원을 조성하는 내용이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인흥마을) 봄나들이

남평문씨본리세거지(인흥마을,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는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말기의 전통가옥 9채와 재실 1채, 정사 1채 그리고 문소 1채가 있다. 이곳은 바로 고려 말기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의 18세손 문경호가 옛 인흥사 절터에 남평문씨 일족의 마을을 만든 곳이다.   전통마을 입구 주차장에 들어서면 문익점 동상이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뒤에는 넓은 목화밭이 있고 왼쪽에는 큰 연못이 펼쳐지는데 아름답게 조성된 조경과 연못 둘레길, 못 중앙 섬에 심어진 노송 두 구루, 그 뒤로 보이는 전통가옥과 울타리로 만들어진 노송숲, 그리고 만발한 매화로 눈을 황홀하게 한다. 아마 유명 화가가 아무리그림을 그려도 자연 이대로의 더 좋은 작품을 감히 ..

동우회원들이 농촌일손돕기 후 답사한 '의성 고운사'가 사라졌다. - 그때의 모습 다시 보기(1)

등운산(騰雲山) 고운사(孤雲寺) 지금으로부터 1363년 전 신라 문무왕 떼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최치원(崔致遠)이 가운루와 우화루를 세우고 이를 기념하여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高雲寺)라 개칭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식량기지와 부상 당한 승병을 돌보았다고 했다.   예부터 생을 다하고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할 만큼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하는 고운사 사찰이 2025년 3월 22일 토요일 오전 11시 25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 후인 2025년 3월 25일 단촌면 구례리에서 13백여 년을 지켜낸 성지 고운사가 화마에 삼켜 건물 대부분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고운사가 사라졌다는 것은 우..

그렇게 찬란하던 의성 '고운사' 사찰이 대부분 화마로 소실되었다. 그때의 모습 다시 보기(2)

가운루 옆에 서 있는 최치원이 세운 우화루 벽엔 커다란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는 걸작이다. 우화루의 "호랑이 벽화"는 살아 있는 호랑이라고 소문이 나있다. 조선시대 중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눈이 어딜가도 따라오는 특이한 살아 있는 벽화라고 한다. '우화루'는 카페로 사용 중이다.  극락전은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ㆍ대세지 두 보살을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현재의 대웅보전이 신축되기 전까지 고운사의 큰법당 역할을 하던 유서 깊은 건물로 소박하면서 절제되고 또한 엄중한 기상을 엿볼 수 있다.  연수전은 조선조 영조가 내린 어첩(御帖)을 봉안하던 건물로 현재의 건물은 고종이 새로이 지었다.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던 곳으로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형태와 벽화를 볼 수..

'능수매화' 시인 이명은

">  능수매화 이명은  하늘 여행 떠난 사람목 빼어 기다려도산세 높은 가야산 넘어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하늘비가 내려오던 날해마다 피고 지는 능수매화눈물방울 머금은 잔향에산새 들새 풀새 울었다 생로병사 희노애락한세상 살면서회자정리 피하지 못하여못내 그리던 꿈의 대화이토록 주고받지 못했다 내 마음속에 살아남아끊어지지 않는 그 호흡으로풀잎을 맴도는 애틋한 소망에몸도 마음도 하나 되어 울었다 경북 성주 출생, 계간 『시세계』 등단, 문학세계 문학상 본상, 대상 수상, 세계문학상 시 부문 수상, 성주 여성단체 회장 역임, 문학세계문인회 정회원, 성주공공도서관 별고을 독서회, 성주문학회, 금오문학회, 대구산문과 시학 회원, 대구시사랑회 부회장, 시집 『팔미꽃 편지』, 대표 작사곡 『미미강 연가』, 『가야산..

눈 내린 날 '한티순교성지'에 가다

"> 눈내린 날 '한티순교성지'에 가다한티순교성지  한티순교성지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에 위치한 천주교 성지로서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를 피해 모인 신자들이 형성한 교우촌으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신앙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서쪽의 가산(901미터)과 남동쪽의 팔공산(1,192미터) 사이 해발 600미터의 깊은 산중턱 고갯길에 자리잡고 있는 천혜의 은둔지로,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모여 신자촌을 이루었다.   역사적 배경으로서,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를 전후하여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이곳에 숨어들기 시작하여 1850년 말경에는 큰 교우촌으로 성장했다. 1860년 경신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1868년에는 병인박해가 진행 중일 때 배..

대구형무소 역사관에 가다

대구형무소 역사관  일제강점기 대구형무소에 투옥되었던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희생 정신을 기리고, 시민들에게 역사교육과 애국심 함양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대구형무소  대구형무소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1908년 대구부에 처음 설립된 뒤 1910년에 중구 삼덕동으로 이전 됐다. 대구형무소에서는 잠정 2,386명의 서훈 독립운동가가 투옥 됐고, 이 가운데 216명(국가 서훈 212명)은 순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로 추모된 195명(국가 서훈 175명)보다 많은 숫자이다. 대구형무소 연혁- 1908년 7월 대구감옥 개청(경상감영 관하/현, 중부경찰서 뒤편)  1910년 4월 신축 이전(대구 중구 삼덕동 102)  1923년 5월 대구형무소로 명칭 변..

대구형무소 역사관, 자칭(自稱) '순국애국지사 통곡의 벽' 앞에서 예를 올리다

한 서린 담벼락 위 ‘대구형무소 역사관’ 세웠다(영남일보 기사)                                                                          2025. 2. 28 영남일보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한이 서려 있는 옛 대구형무소 터(현 대구 중구 삼덕교회)에 역사관이 들어섰다. 그간 담벼락을 바라보며 조상을 기려야 했던 후손들의 설움을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게 됐다. 대구 중구청은 27일 삼덕교회 중정에서 대구형무소 역사관 개관식을 가졌다. 삼덕교회 자리는 일제강점기 한강 이남 최대 규모의 감옥(형무소)이 있던 곳이다. 삼남(경상·전라·충청) 지방의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수감됐으며, 독립운동가 216명(서훈 21명)이 순국한 아픈 역사의 현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