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각종 모임/대구시행정동우회

동우회원들이 농촌일손돕기 후 답사한 '의성 고운사'가 사라졌다. - 그때의 모습 다시 보기(1)

가야돌 2025. 3. 27. 14:35

대구행정동우회 봉사단 기념촬영(2024. 5. 9)
등운산 고운사

 

  등운산(騰雲山고운사(孤雲寺지금으로부터 1363년 전 신라 문무왕 떼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최치원(崔致遠)이 가운루와 우화루를 세우고 이를 기념하여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高雲寺)라 개칭하였고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식량기지와 부상 당한 승병을 돌보았다고 했다.

 

  예부터 생을 다하고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할 만큼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하는 고운사 사찰이 2025년 3월 22일 토요일 오전 11시 25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 후인 2025년 3월 25일 단촌면 구례리에서 13백여 년을 지켜낸 성지 고운사가 화마에 삼켜 건물 대부분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고운사가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 시대에 이를 길이 보전 못한 엄청난 안타까움과 가슴 여미는 비애를 느끼면서 우선 피해상황을 각종 뉴스를 종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고운사가 소실된 시기는 2025년 3월 25일 오후 4시 50분경이다의성군 단촌면 등운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가 산불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

  고운사 주지 스님의 성함은 등운 스님이며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문화유산의 보호도 중요하지만무엇보다도 생명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고운사의 피해 상황은 다음과 같다

  소실된 건물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연지암해우소정묵당아거각약사전고운대암극락전만덕당종무소종각우화루행사채수월암백련암 공양간일주문숭가대템플관 등

 

살아남은 건물대웅보전사천왕문명부전천왕문고불전삼성각나한전고금당 등

 

  이번 산불로 인해 고운사에 이르는 수십 년 된 명풍 소나무숲길도 모두 잿더미로 변했다조계종은 피해 사찰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유관 기관과 긴밀하게 협조해 문화유산 관리 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출처 연합뉴스뉴시스, SBS뉴스불교닷컴 등 다수

 

카페 게시자의 의견

  2024. 5. 9, 대구행정동우회 김대묵 회장, 이영순 봉사단장, 김병규 명예회장, 안중남 사무총장과  봉사단 30여 명은 당일 금성면 한 농가를 방문하여 '마늘쫑 뽑기' 농촌일손돕기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오찬을 끝낸 후 이곳 천년 고찰 고운사를 찾았다.  짧은 시간 내에 골고루 본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었으나 단체로 같이 탐방한다는 것은 큰 이의가 있었으며 이 방문이 2025. 3. 25 화마로 인하여 천년 전의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 그 당시 모습을 그대로 옮겨와 다시 한번 보고자 한다. 

 

고은사 탐방(2024년 5월 9일 당시 영상)

 

고운사(孤雲寺)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구계리 116) TEL: 054-833-2324

 

  등운산 기슭에 위치한 고운사는 661(신라 문무왕 1)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대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이 여지대사여사대사 등과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세우고 이를 기념하여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高雲寺)라 개칭했다고 한다고운사는 948(고려 정종 3)과 1018(현종 9)에 중창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을 승군의 전방기지로 사용하여 식량을 비축하고 부상한 승병들에 대한 뒷바라지를 해준 곳이다.

 

  석학으로 이름 난 함홍선사가 이곳에서 후학을 지도할 때는 무려 500명의 대중스님이 수행하기도 했다사찰 건물은 1835년에 소실된 것을 만송대사호암대사수열대사 등이 중창했다. 1970년대에 건물 일부가 다시 소실되었다.

 

  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이다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보살님의 원만자비하신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한다.(출처 : 의성군)

등운교

  산문에서 일주문까지 상당한 숲길 거리 좌우에는 울창한 소나무와 많은 활엽수들이 욱어져 있고 사월 초파일을 앞두고 곱게 조성된 흙길이 산림욕 못지않게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의성 고운사의 '조계문' 편액을 달고 있는 일주문은 사찰의 입구로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이다.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일부문을 꼽으라면 고운사의 일주문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민흘림 기둥 2개를 세워 팔작지붕을 올린 익공계 형식의 일주문,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연화장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번째 관문인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것에 유래하였으며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일주문 뒤로 '천왕문'이 보인다.

  의성 고운사의 '조계문' 편액을 달고 있는 일주문은 사찰의 입구로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이다.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일부문을 꼽으라면 고운사의 일주문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민흘림 기둥 2개를 세워 팔작지붕을 올린 익공계 형식의 일주문,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연화장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번째 관문인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것에 유래하였으며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일주문 뒤로 '천왕문'이 보인다.

고운사 안내도
'천왕문'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협 칸을 두어 양쪽에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1936년에 천왕문을 이건 하였다
고불전은 천황문 바로 뒤쪽에 위치하며 오래된 석불을 봉안해 놓은 아주 작은 전각으로 그 요철 모양의 구조가 특이하다.
사찰 입구 쪽에서 바라본 구름 위의 누각 가운루 모습

   일주문을 통과하여 맨 먼저 나타나는 건물이 신라 말 학자인 최치원이 세운 누각인 가운루로 옛날에는 이 누각 아래로 계곡물이 많이 흘러내렸다. 그래서 계곡에 잠기는 부분에는 돌기둥을 놓고 그 위로는 나무 기둥을 이어서 누각을 받쳤다. 이제는 예전처럼 물이 흐르지 않아 본래의 진가는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건물 자체의 정교한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후원(가운데 잔디 마당)과 우화루(왼쪽 - 카페로 이용) 그리고 가운루 (오른쪽)
우화루(카페시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었다는 구름 위의 누각 가운루(駕雲樓)에서 바라본 우화루(雨花樓)와 범종각 (1)
가운루(駕雲樓)에서 바라본 우화루(雨花樓)와 범종각 (2)
가운루(駕雲樓)에서 바라본 우화루(雨花樓)와 범종각 (3)
가운루의 난간과 오랜세월동안 튼튼하게 견디어온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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