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고향소식/고향소식 (성주) 24

성주읍에서 대가면 금산리(웃상삼)까지 승용차로 달려본 영상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성주읍에서 대가면 금산리(웃상삼)까지 승용차로 달려본 영상   2023년 3월 4일, 온 세상 만물이 소생하기 전 비교적 이른 봄날 대구에서 그렇게 멀지 않는 내 고향 성주군 대가면 금산 2리(옷상삼 마을)에서 성주읍을 지나 성주중학교까지 3년을 하루 왕복 20km(오십리) 다녔던 추억을 잊지 않고 70여 년이 지난 이때 그 길을 걸어보고자 남의 차로 달려 고향에 도착한 다음 성주읍까지 걸어보기로 하였습니다.  특히 이러한 작은 행사는 우리 누님, 형님도 이 길을 다녔기 때문이고 2022년 8월에 별세하신 형님(중교교 6년 통학)의 흔적도 느껴보고자 함입니다.   우선 1차로 성주읍에서 고향마을까지 남의 차로 달려간 영상입니다..

2. 대가면사무소에서 성주군청까지(동영상, 사진) 먼길을 걷고 또 걸었다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대가면사무소에서 성주군청까지    대가면소재지(일명 ‘여으실’)를 지나 옛 채석장(採石場)을 본 후 그 옛날 여기까지 와서 멱 감던 큰 연못(공장리제)을 구경 했다. 그곳에서 보이지 않지만 남쪽 낮은 언덕 아래에는 칠봉산 아래 칠봉리 고을에 유촌, 신기마, 사도실, 새터 등이 있다.   면사무소에서 1km 걷다 보면 왼쪽 남향 예쁜 마을 옥성리(玉星里) ‘앵뫼동(鶯舞洞)이 있고 우측에는 군장리(軍場), 다시 내려오면 안터(內垈)가 있다. 길에서는 볼 수 없고 낮은 등 왼쪽 너머 용흥리에는 용전(龍田), 잉기촌(龍鷄村), 서치뫼(捿雉山)가 있다.   흥산리에는 탕실, 산막(鳥頭山幕)이 있다. 그렇게 걷다 쉬고 사진 촬영, 동영..

1. 고향마을 (웃상삼) 입구에서 대가면소재지까지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관련 사진)  집에서 통학할 때 이 정려각(열여각이라고 불렀다) 앞을 지나갈 때 대낮에도 혼자라면 등골이 오싹하였으며, 자갈길을 걸을 때  항상 누군가가 뒤따라보는듯했다. 비가 오거나 늦은 밤에 지나칠 때는 정말 무서움에 떨었다. 아마 이 앞을 통과할 때는 항상 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사람 이름을 불러댔다.  이 열려각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었다. 본인은 정려각에 대한 자료를 이 기회를 통하여  상세히 찾아 보았다.   수성라씨 열여 정려각(壽城羅氏 烈女 旌閭閣)   아래상삼과 못안상삼 중간 지점에 위치한 수성라씨 열여 정려각은 아래상삼 마을에 성산인(星山人) 화당(花堂) 배규(裵規)와 두 아들 한(閑), 윤(閏)의 3부자..

나의 살던 옛고향 (성주 대가 웃상삼)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부지런하자 눈보라 긴 겨우내 밟히고 또 밟혀도새봄 맞아 언덕에 푸르름을 더해주는우리 모두 억세게 자란 잔디를 닮자. 먹구름 한여름도 비바람 한세월도넓은 들 푸른 하늘 마음껏 날으면서열심히 꿈을 나르는 꿀벌을 닮자. 일찍이 우리고향 초가집 오막살이재넘어 자갈밭을 밤낮으로 가꾸면서열심히 한평생 지낸 옛 어른을 닮자.(1991년)  부모사랑 자식사랑 높은 것은 하늘이요 넓은 것은 바다로다하늘과 바다보다 더 큰 것은 무었이뇨우리를 낳아 기르신 단 두 분인 부모님 날아가랴 넘어지랴 길러주신 세월 속에곱던 모습 어느 사이 얼굴에 패인주름부모님 자식사랑은 그렇게도 큽니까 한 사람 더 모여서 웃음꽃 피어나니이제는 저희들이 앞장서서 가리로다부..

고향마을에 가다(5) - 부친이 밤낮으로 일구었던 전답터(꼬바우)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고향마을에 가다(5) - 부친이 밤낮으로 일구었던 전답터(꼬바우) 우리 가족들 5명이 무럭무럭 자라고본인이 걸어 다니던 1950년대 초반,유일한 낙이라고는 마을 남서쪽숲속 비탈면을 부모님께서 30대에 수년 동안개간하여 만든 전답이었고,이름은 속칭 ‘꼬바우’라고 불렀다. 초등학교(초등학교) 시절봄부터 가을까지 부모님 따라누님, 여동생과 함께 사흘이 멀다하고뒤따라 다니면서 비탈진 전답 위에노송 59구루가 빽빽한숲속 큰 바위에 앉아공부, 노래를 부르면서어두워져야 부모님 따라 내려왔다. 뽕나무, 고욤나무도 많이 심어빨간 오디를 마구 먹다입술 주변이 빨갛게 변하기도 하고,서리 맞은 달디 단 고욤도 많이 따먹었지. 웅덩이에서 힘들게 물 퍼..

고향마을에 가다(1) - 고향마을 전경과 마을회관

고향마을에 가다(1) - 고향마을 전경과 마을회관   대가면(大家面)  大家(대가)라는 名稱(명칭)은 儒學(유학)의 大家(대가)이신 寒岡 鄭逑, 동강 김우옹 선생과 그 외 名賢巨儒(명현거유)가 많이 輩出(배출)되어 큰집이란 뜻에서 大家(대가)라 命名(명명)하였다 함.(출처 : 성주군) 星州郡 大家面 金山里  금산동(金山洞) 영파면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가면으로 편입되었다. 이때 대산동, 조양동, 금곡동, 삼산동을 병합하였으며, 금곡과 대산의 이름을 따서 금산리라고 하였다.   가야산, 다락산, 칠봉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낙동강의 지류가 흐른다. 삼산(三山)[상상삼(上象三) · 웃상삼], 뫼재[조양(朝陽) · 산령(山嶺)], 대산령(大山嶺)..

경북 성주 성밖숲 ‘왕버들과 맥문동’의 장관(壯觀)

" autoplay="1" loop="1" controls="1" type="audio/mpeg">"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경북 성주 성밖숲 ‘왕버들과 맥문동’의 장관(壯觀) 주소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446-1 일대구분 : 천연기념물(1999년 4월 6일) 왕버들 조성 내역  성밖에 조성된 숲이라는 단순한 이름 뒤에는 성주의 다양한 역사와 생활사가 담겨진 가치 높은 공간이다. 밤나무 숲으로 이루어졌던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에 왕버들로 숲을 다시 조성하였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 여름 왕버들과 함께 맥문동이 연출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성주 경산리의 성(城)밖숲은 풍수지리사상에 따라 성주읍성(星州邑城) 밖에 조성한 ..

'나그네 설움' 노래와 성주의 자랑거리

나그네 설움 백년설 노래, 조경환 작사, 이재호 작곡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 땅 밟아서 돈지 십 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 속에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 가야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어 새벽별 찬서리가 뼈골에 스미는데 어디로 흘러가랴 흘러갈소냐 1940년 ‘나그네 설움’ 노래가 나오기까지 ‘번지 없는 주막’을 발매한 직후에 조경환은 백년설과 함께 경기도경찰부 고등계의 호출을 받고 불려가서 호된 취조를 받았다. 이유는 주막집에 번지가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그것이 조선의 현실을 상징한 것이 아니냐는 등 담당 경찰..

백년설 가수 외손자 최현진 씨(미국 거주) 외조부 모교 성주고 방문

박동주 교장선생님, 주설자, 최현진, 이명은, 이태희(오른쪽으로부터) 백년설 가수 외손자 최현진 씨(미국 거주) 외조부 모교 성주고 방문  일 자 : 2023년 4월 17일(화)  방문지 : 성주고등학교, 성주고 역사관, 백년설 노래비 3개소(성주고 교정, 성주이씨 시비(詩碑) 공원, 성밖숲), 오현재(五峴齋, 성주 이씨 재실), 사우당 종택(한옥∙다도茶道 체험), 범사 이상희 문고(대구두류도서관)  동 행 : 주설자, 이명은, 이태희  목 적 : 최현진 씨는 32세 미혼 청년, 1954년 경북 성주 성주농업보습학교 제4회 졸업한 백년설(본명:이갑룡, 1914∼1980) 외손자로서 미국에서 태어나 부모님 사업관계로 한국 서울에서 거주하는 동안 초•중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LA 거주..

성주 이씨 유래와 중시조 재실 오현재(中始祖 齋室 梧峴齊)

오현재(梧峴齋)와 성주이씨 시조 신라재상 순유(純由) 제단비(齊壇碑) 성주 이씨 유래와 시조 시조 이순유(李純由) 성주 있는 경상북도 성주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성씨는 경주 이씨로부터 갈라져 나와 시조인 이순유(李純由)는 알평의 후손으로 신라 말엽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으며 경순왕조(敬順王朝ㆍ927~935년)에 재상(宰相)까지 올랐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이순유는 아우 이돈유(李敦由)와 더불어 기울어져 가는 신라의 마지막을 지켜본 충신으로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민심을 수습하고 천년의 사직(社稷)을 보존하기 위하여 구국의 방책을 기도하였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름마저 극신(克臣)이라 고쳐 지금의 성주읍 경산리(京山里)에 옮겨 숨어 살았다고 한다..

사우당종택(四友堂 宗澤) 영모당에서 내려다 본 윤동마을의 산과 들(3)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경북 성주 수륜면 윤동마을 사우당 종택 중에서 사우당 용마루 높이에 문절공 김용초를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재실 영모당이 있다. 원래 영모당은 김천시 부항면에 있었지만 부항댐 건설로 최근 윤동마을로 이전됐다고 한다. 종택의 이름 사우당은 이곳 윤동마을에 입향한 김관석(金關石)의 호에서 유래했다. 조선 중종조의 학자인 사우당 김관석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로 지금까지 윤동마을은 의성김씨 집성촌이 되었으며, 마을의 정신적 지주이자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다음 사진은 미국에서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성주를 처음 방문하는 최현진 씨, 성주중고등학교 前 동창회장 주설자 님, 前 성주군부녀회 이명은 님 등 몇 명이 류정숙 종부님 댁을 방문한 ..

백년설 외손자 최현진 성주 대구 방문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백년설 가수 외손자 최현진 '백년설 노래비' 를 찾아서 백년설•심연옥 부부 가수는 가족들과 함께 1963년 미국으로 거너가 이민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모국 대한민국을 한시도 잊지 않고 한국 많은 분들과 교류하였고, 이혜정 씨와 이길영 씨 남매도 수시로 한국을 방문, 방송사에 들려 부모님의 노래를 불러 가수 못지않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혜정 씨는 부군과 함께 10년 동안 한국에 귀국하여 사업을 하는 동안 두 아들도 서울에서 초•중학교를 다녔다. 이후 다시 부모와 함께 미국에 건너간 두 아들(백년설 외손자)은 짧은 기간에도 열심히 노력하여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다른 주에서 스스로 각각 독립하여 생활하고 있다. 이혜정 씨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공인회..

'내 고향 성주 고을' 노래와 성주 명승지 영상 소개

HTML 삽입 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성주 명승지 사진 이모저모) 성주읍 도심지 낮은 언덕에 자리잡은 성주여자중고등학교 정문에서 사방을 바라보노라면 읍소재지 아기자기한 풍경이 눈에 쏙 들어온다. 특히 서쪽 방향을 보노라면 산과 들이 손에 잡힐듯 자연의 모습이 아름답다. 눈앞에는 아담한 주택들이 옹기종기 정답게 모여 있고 바로 옆 성밖숲은 수백년 넘은 떡버들나무들로 욱어져 풍광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끝없이 펼쳐진 참외밭 비닐하우스가 하얗게 줄지어 장관을 이룬다. 우리나라 참외 70%가 이곳 산지에서 전국으로 실려나가고 동남아 수출까지 하고 있다하니 놀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또 유심히 쳐다보노라면 왼쪽에는 다소 높은 봉우리들이 작아지면서 키재기 하듯 이어져 있다. 일곱봉우리가 '칠봉산'으로..

李相熙 前 내무부장관 육성(노래) - 진주 남강 동영상

강남달 1927년 김서정(金曙汀, 본명 永煥) 작사·작곡으로 발표된 대중가요. 1927년 제작된 무성영화「낙화유수」의 주제가 일본식의 유행가나 외국의 가요를 번안해 부르던 당시 우리나라 창작 대중가요 제1호 작품 1절 강남 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 밤을 홀로 새우나 2절 멀고 먼 님의 나라 차마 그리워 적막한 가람가에 물새가 우네 오늘 밤도 쓸쓸히 달은 지노니 사랑의 그늘 속에 재워나 주오 3절 강남에 달이 지면 외로운 신세 부평의 잎사귀에 벌레가 우네 차라리 이 몸은 잠들리로다 님이 절로 오시어서 깨울 때까지 이상희李相熙 前 내무부장관님께서 ‘강남달’ 노래의 유래와 육성으로 노래를 감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