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고향소식/고향소식 (성주)

1. 고향마을 (웃상삼) 입구에서 대가면소재지까지

가야돌 2024. 9. 16. 16:54

 

(관련 사진)

웃상삼 마을 입구에서 동쪽 방면, 성주에서 대가 우회도로를 거쳐 직선으로 가천면으로 가는 도로가 보인다. 보이는 비탈면 전답 사이에 흐르는 개울이 있었는데 여름부터 가을까지 고무신을 작은 창끝에 달고 불을 붙여 달 밝은 밤에 나가면 풀을 뜯어먹으려고 가재가 득실거리고 있어 한 통씩 잡아와서 밤중에 그 가재를 삶아먹기도 했다.
사진 중간, 웃상삼에서 못안상삼으로 가는 구(舊)길이보인다
금산 2리 웃상삼에서 대가초등학교까지(다음 평면지도, 최신)
마을에서 성주중학교까지
마을에서 성주중학교까지(최신지도)
2008년 지도
못안상삼 남쪽 경사진 길과 전답, 정면 보이는 산에서는 이따금 이른 새벽에 산 중턱에서 한,두마리의 늑대가 소리 높혀 울고 있었는데 그때는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 그리고 마구 달리다보니 제발자국에 놀라 소름이 끼치기도 했고, 아는 사람의 이름도 마구 불렀다. 열 너댓살 중학교 시절이었다.
못안상삼 서편 입구길, 12시 방향에 보이는 둥근 산이 '다락산'이다.
못안상삼 앞 못 일부에 정자를 만들었다
못을 개조하여 목책 산책길로 만들었다. 옛날 초등하교 시절 여기에서 목욕도 하였다.
못안상삼 건너편 구길에서 마을을 본 풍경
도로변에 소규모 매화단지 조성

  집에서 통학할 때 이 정려각(열여각이라고 불렀다) 앞을 지나갈 때 대낮에도 혼자라면 등골이 오싹하였으며, 자갈길을 걸을 때  항상 누군가가 뒤따라보는듯했다. 비가 오거나 늦은 밤에 지나칠 때는 정말 무서움에 떨었다. 아마 이 앞을 통과할 때는 항상 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사람 이름을 불러댔다.

  이 열려각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었다. 본인은 정려각에 대한 자료를 이 기회를 통하여  상세히 찾아 보았다. 

2008년도 평면도

 

1960년대 대가초등학교
봉동(鳳洞) 마을
대가면소재지 입구, 마을 일부를 철거하고 조경사업 실시
구길로 들어서니 폐가가 눈에 띈다
구길로 가면 폐가(廢家)가 나타난다
차가 다녔던 구(舊)길
대가면사무소
대가면 청서(1970년경)
대가우체국(1970년경)
대가면소재지(1970년경)
대가파출소

 

수성라씨 열여 정려각(壽城羅氏 烈女 旌閭閣)

 

  아래상삼과 못안상삼 중간 지점에 위치한 수성라씨 열여 정려각은 아래상삼 마을에 성산인(星山人) 화당(花堂) 배규(裵規)와 두 아들 한(), () 3부자가 문과를 거쳐 대사성(大司成)을 거친 집안으로 배윤은 세종 때 대사동(大司諌), 홍문관 직제학을 지낸 대가(大家)였고, 세조 때 운명(殞命)을 당한 김종서는 배윤의 사위였다.

 

  뒷날 배윤이 병사하고 부인 수성라씨는 몸소 머리를 깎고 3년 시묘살이를 선남 오도마을 묘소에서 끝내고 지아비를 뒤따랐다. 정려각에는 아들 설송(雪松) 배성겸(裵聲謙)의 효행비가 함께 있다. 아래상삼 모원재(慕遠齋)는 배윤, 아들 설송 배성겸, 삼헌(三軒) 배석의(裵錫義)를 추모하는 재실이 있다. 그리고 정려각은 1994년 훼손으로 중수(重修)하였다.(출처 : 성주마을지, 1998년 발행)

 

 

사진 촬영일 : 흑백 사진(대가면 기관단체) : 1960년 후반

                       칼라 사진 : 1차  2022년 10. 2,   2차 : 2023. 3. 4

 

 

제 2편으로 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