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2024/09/16 10

내 어릴 적 가보았던 추억어린 이모님 동네 - 성주 가천 법전리(아전촌 마을)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내 어릴 적 가보았던 추억어린 이모님 동네 - 성주 가천 법전리(아전촌 마을)  아전촌(蛾田村)  가야산의 정북 방향인 아박산(蛾簿山,693m) 동편 아래 산자락으로 접어 감고 자리한 협곡 산촌이다.아전촌(蛾田村)의 지명은 아박산(峨簿山:原音 나박산)의 "박”을 “밭(田)”으로 빌려 기록한 것이며, 우리말 고어에는 나박산, 나브실(벽진면 운정리)에서 나브(廣, 橫) 즉 넓고 빗(큰, 大)의 뜻이고 따라서 나박산(漢字 蛾簿은 이미 없음)은 대산(大山)을 뜻한다.   나박산정에 오르면 시계가 무한이 넓고 지리에 밝은 측면에서는 법림산(法林山)의 명기(名氣)가 들어나 나박산이라 할만한 것이다. 아전촌마을에는 김녕 출신의 선조때가 김명..

카테고리 없음 2024.09.16

성주읍에서 대가면 금산리(웃상삼)까지 승용차로 달려본 영상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성주읍에서 대가면 금산리(웃상삼)까지 승용차로 달려본 영상   2023년 3월 4일, 온 세상 만물이 소생하기 전 비교적 이른 봄날 대구에서 그렇게 멀지 않는 내 고향 성주군 대가면 금산 2리(옷상삼 마을)에서 성주읍을 지나 성주중학교까지 3년을 하루 왕복 20km(오십리) 다녔던 추억을 잊지 않고 70여 년이 지난 이때 그 길을 걸어보고자 남의 차로 달려 고향에 도착한 다음 성주읍까지 걸어보기로 하였습니다.  특히 이러한 작은 행사는 우리 누님, 형님도 이 길을 다녔기 때문이고 2022년 8월에 별세하신 형님(중교교 6년 통학)의 흔적도 느껴보고자 함입니다.   우선 1차로 성주읍에서 고향마을까지 남의 차로 달려간 영상입니다..

2. 대가면사무소에서 성주군청까지(동영상, 사진) 먼길을 걷고 또 걸었다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대가면사무소에서 성주군청까지    대가면소재지(일명 ‘여으실’)를 지나 옛 채석장(採石場)을 본 후 그 옛날 여기까지 와서 멱 감던 큰 연못(공장리제)을 구경 했다. 그곳에서 보이지 않지만 남쪽 낮은 언덕 아래에는 칠봉산 아래 칠봉리 고을에 유촌, 신기마, 사도실, 새터 등이 있다.   면사무소에서 1km 걷다 보면 왼쪽 남향 예쁜 마을 옥성리(玉星里) ‘앵뫼동(鶯舞洞)이 있고 우측에는 군장리(軍場), 다시 내려오면 안터(內垈)가 있다. 길에서는 볼 수 없고 낮은 등 왼쪽 너머 용흥리에는 용전(龍田), 잉기촌(龍鷄村), 서치뫼(捿雉山)가 있다.   흥산리에는 탕실, 산막(鳥頭山幕)이 있다. 그렇게 걷다 쉬고 사진 촬영, 동영..

1. 고향마을 (웃상삼) 입구에서 대가면소재지까지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관련 사진)  집에서 통학할 때 이 정려각(열여각이라고 불렀다) 앞을 지나갈 때 대낮에도 혼자라면 등골이 오싹하였으며, 자갈길을 걸을 때  항상 누군가가 뒤따라보는듯했다. 비가 오거나 늦은 밤에 지나칠 때는 정말 무서움에 떨었다. 아마 이 앞을 통과할 때는 항상 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사람 이름을 불러댔다.  이 열려각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었다. 본인은 정려각에 대한 자료를 이 기회를 통하여  상세히 찾아 보았다.   수성라씨 열여 정려각(壽城羅氏 烈女 旌閭閣)   아래상삼과 못안상삼 중간 지점에 위치한 수성라씨 열여 정려각은 아래상삼 마을에 성산인(星山人) 화당(花堂) 배규(裵規)와 두 아들 한(閑), 윤(閏)의 3부자..

나의 살던 옛고향 (성주 대가 웃상삼)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부지런하자 눈보라 긴 겨우내 밟히고 또 밟혀도새봄 맞아 언덕에 푸르름을 더해주는우리 모두 억세게 자란 잔디를 닮자. 먹구름 한여름도 비바람 한세월도넓은 들 푸른 하늘 마음껏 날으면서열심히 꿈을 나르는 꿀벌을 닮자. 일찍이 우리고향 초가집 오막살이재넘어 자갈밭을 밤낮으로 가꾸면서열심히 한평생 지낸 옛 어른을 닮자.(1991년)  부모사랑 자식사랑 높은 것은 하늘이요 넓은 것은 바다로다하늘과 바다보다 더 큰 것은 무었이뇨우리를 낳아 기르신 단 두 분인 부모님 날아가랴 넘어지랴 길러주신 세월 속에곱던 모습 어느 사이 얼굴에 패인주름부모님 자식사랑은 그렇게도 큽니까 한 사람 더 모여서 웃음꽃 피어나니이제는 저희들이 앞장서서 가리로다부..

고향마을에 가다(5) - 부친이 밤낮으로 일구었던 전답터(꼬바우)

" data-ke-type="html">HTML 삽입미리보기할 수 없는 소스 고향마을에 가다(5) - 부친이 밤낮으로 일구었던 전답터(꼬바우) 우리 가족들 5명이 무럭무럭 자라고본인이 걸어 다니던 1950년대 초반,유일한 낙이라고는 마을 남서쪽숲속 비탈면을 부모님께서 30대에 수년 동안개간하여 만든 전답이었고,이름은 속칭 ‘꼬바우’라고 불렀다. 초등학교(초등학교) 시절봄부터 가을까지 부모님 따라누님, 여동생과 함께 사흘이 멀다하고뒤따라 다니면서 비탈진 전답 위에노송 59구루가 빽빽한숲속 큰 바위에 앉아공부, 노래를 부르면서어두워져야 부모님 따라 내려왔다. 뽕나무, 고욤나무도 많이 심어빨간 오디를 마구 먹다입술 주변이 빨갛게 변하기도 하고,서리 맞은 달디 단 고욤도 많이 따먹었지. 웅덩이에서 힘들게 물 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