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덕천마을에 위치한 송소고택은 조선 후기 양반가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름다운 고택이다. 이곳은 조선 중기부터 대대로 이어진 소씨 가문의 집성촌으로, 특히 송소고택은 약 130년 전인 1880년대에 지어진 역사 깊은 저택으로서, 학자이자 문신인 송소(松巢) 권씨 가문의 후손이 지었다. 송소는 그 당시 권력에서 물러나 자연 속에서 학문을 닦고 인격을 갈고닦으며 은둔생활을 한 인물로, 그의 후손들이 그 뜻을 이어받아 송소고택을 세웠다고 한다.
송소고택은 사랑채, 안채, 별당 등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건물들이 정교하게 배치된 모습은 옛 양반가의 생활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송소고택은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과 함께 한국 고유의 주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청송 덕촌마을은 송소고택 이외에도 초전댁, 창실고택, 칠방공종택, 송정고택 등 각기 독특한 건축 양식과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 덕촌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전통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마을 일대는 청정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계절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즐길 수 있다.(자료제공 : ChatGPT )
마을터돌
태백산맥의 한 줄기 아래 여기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의 마을터돌을 세운다
우리 마을에는 주로 청송 심씨가 많이 사는 마을로 심씨 족보상 기록에는 약 서기 1400여 년 경부터 살아온 기록이 있으며 1950년 경에 이르러 청송 심씨의 가 호수가 약 110호, 아산 장씨의 가 호수가 약 25호, 기타 성이 약 10호가 되고 인구는 약 900여 명 정도가 되어 파천면에서도 가장 큰 마을이었다. 1960∼70년대에 산업의 발달로 젊은 세대들이 약 200여 명 이상 서울, 대구, 부산 등지로 직업을 찾아 떠났다.
우리 마을은 예전에는 행새(行世)하는 성씨의 반촌으로 문중을 이루어 예의 바르고,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마을이었으며, 청송 심부자 집을 위시하여 대농가 집이 많고 거슬들과 반밭들을 거의 차지하여 경작하였다.
지금은 많이 변하여 인구도 불과 약 200여 명으로 감소 되었다. 그러나 우리 마을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도리로 살아갈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전하여 작은 실수와 오해는 언제나 있을 수 있으니 반성하여 용서를 구하고 이해하며 양보하여 서로 간에 불편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 서로가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므로 여기 마을 터돌을 세워 후손 만대에 이 뜻을 길이 이어 살아가길 바란다. 아무쪼록 나약한 후손들의 장래에 영광스러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숭배하는 선조님의 가호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2002년 4월 15일
마을 주민 일동
※ ‘거슬’이란 뜻은 ?, ‘반밭’이란 뜻은 밭(田)이 반(1/2)이라는 뜻으로 보여짐
송소고택 내외부
덕천마을 이모저모(일부 촬영)
이외 상세한 내용을 알고자 하는 회원께서는 청송 홈페이지 또는 인터넷 각종자료 등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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