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고향소식/고향소식 (성주)

고향 마을에 가다(4) - 고향집 주변 이모저모

가야돌 2024. 9. 16. 16:08

 

지금 소가 있는 장소가 옛날 우리 집이 있었던 집터였다. 초록색 집은 우리 집 앞집이다.
지금 사진 촬영한 자리는 우리 집과 이웃에 살았던 외갓집 빈터, 우리 집 집터 남쪽 마당 끝에는 감나무와 복숭아 나무가 있었고(현재는 보이지 않음), 앞집(초록지붕) 뒤에도 감나무 한 구루(사진)가 더 있었다. 그 당시 마당 끝에는 참나무 두 구루가 양 날개 모양으로 자라 훌륭한 울타리 역할을 하였다. 뒷집에는 아랫채 스레트 지붕이 약간 보이고 큰 감나무도 잘 자라고 있다. 집터 뒤에는 우리집으로 내려오는 길과 우리 집 뒤로 지나갈 수 있도록 좁을 비탈길도 보인다.
지금 보이는 이 봉숭아 나무는 이웃집에 있는 외갓집 소유 나무다. 복숭아 열매가 달리면 큰나무이므로 맛은 정말 좋았다. 외갓집 숙모님 해마다 익은 복숭아를 한바가지를 담아 주어 얻어 먹는 게 꿀맛이었다. 외숙부님은 본인이 아주 어린 시절 병으로 별세하셨고, 박성환 큰형님은 6.25전쟁 때 전사하셨기에 외숙모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우리 집 부친은 그것을 항상 안타깝게 느끼시며 곡식을 나눠먹는 등 어떤 친척보다도 가깝게 지냈다. 외갓집 막내 여동생은 본인 나이 바로 아래였기에 항상 나를 많이 따랐다. 지금 손위 큰 누님, 장남 형님, 외갓집 남자 3형제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웃집 전정철 씨 집 마당에서 동남쪽으로 촬영하였다.
사진 중앙 전답이 바로 보이는 곳이 '오지밭골'이고 왼쪽 오르막길 윗쪽 전답 보이는 곳이 '정골'이며 멀리 둥굴게 보이는 산봉우리가 '다락산(樓山, 380m)이다. 정골 너머에는 땅고개(당고개, 堂峴)가 있고 '오현재'라는 재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이상희 형님은 대구시 거주 고등학교 교사직을 시직하고 재실에서 고시공부를 1년 동안 거의 밤샘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지금 보이는 다락산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뛰어난 입지에다 신령스러운 봉우리로서 현재자리가 길지라고 하였다. 이 사진은 1987년 촬영이라 수풀도 별로 없고 민둥산으로 파악하기가 좋다.
뒷집 전정철 씨댁인데 어릴 적 이웃 또래들과 무던히도 만나 쏘다니며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추억이 많은 곳이다. 아랫채는 소마굿간, 곳간,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름이면 위치가 다소 높은 곳이라 매일 이곳 아랫방에서 공부도하고 놀기도 하였다.
80년 중반에 신축한 마을회관, 성주군 예산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토지는 따로 소유주가 있었다.
뒷집 왼쪽 폐가(廢家 ), 우리드 어릴 적 가난한 농부가 생활 했다.
폐가를 정리한 후 작은 집을 지어 누군가 살고 있다. 바로 앞에는 감나무 두 그루(2016. 4. 24)
마을회관 담장에서 남향으로 촬영(1987년 7월)
2016년 4월 24일 촬영
두 봉우리 사이에 있는 비탈에 전답 10여 필지가 있다. 이곳은 우리 어릴 적 부모님께서 맨손으로 일구어 60년여 년 경작하셨다. 지금은 폐농으로 무성한 숲으로 덮혀 있다.
마을 동남쪽 방향에서 촬영
마을회관 앞집, 옛날 앞집 어르신들의 자손으로서 귀농부부가 신축건물을 지어 살고 있다.(2016. 4.24 촬영)
뒷집 목조 신축 주택(2016. 4. 24)

 

외가집 집터(빈터)에는 매화꽃이 만발(2023. 3. 4)
외갓집 집터(2023. 3. 4)
우리집 마당끝 지점에 뽕나무에 오디가 주렁주렁(2007. 6.16)
마을 원경(2017.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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