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고향소식/고향소식 (성주)

성주 이씨 유래와 중시조 재실 오현재(中始祖 齋室 梧峴齊)

가야돌 2023. 5. 29. 00:08

오현재(梧峴齋)와 성주이씨 시조 신라재상 순유(純由) 제단비(齊壇碑)

 

 

성주 이씨 유래와 시조 시조 이순유(李純由)

  성주 있는 경상북도 성주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성씨는 경주 이씨로부터 갈라져 나와 시조인 이순유(李純由)는 알평의 후손으로 신라 말엽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으며 경순왕조(敬順王朝927~935)에 재상(宰相)까지 올랐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이순유는 아우 이돈유(李敦由)와 더불어 기울어져 가는 신라의 마지막을 지켜본 충신으로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민심을 수습하고 천년의 사직(社稷)을 보존하기 위하여 구국의 방책을 기도하였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름마저 극신(克臣)이라 고쳐 지금의 성주읍 경산리(京山里)에 옮겨 숨어 살았다고 한다.

 

 

성주 이씨 중시조 이장경(李長庚)

  이장경은 성주 이씨의 중시조로 신라 말의 재상 이순유(李純由) 12대손이며 이득희(李得禧)의 아들로 성주(옛 지명 경산)에서 태어났다. 이장경의 아버지인 이득희는 태몽에서 문창성(文昌星)이 경산(京山, 현 성주)에 떨어지는 것을 본 후 이장경이 출생한 까닭에 이름을 장경(長庚)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장경(李長庚)은 고려 고종 때의 인물로 슬하에 다섯 아들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이 태어났으며 아들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치자 국왕은 그에게 특별히 삼중대광(三重大匡) 좌시중(左侍中),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지전리사사(知典理司事) 상호군(上護軍), 경산부원군(京山府院君)에 봉하였다. 충렬왕 이후 성주목(星州牧)의 지명을 따라 성주 이씨(星州李氏)라고 하게 되었다.(나무위키 참조) 사당은 성주읍 봉산재 내 상덕사(尙德祠)에 있다.

 

   이장경 혼인에 대해서는 성주군수로 부임한 합천이씨 이약(李若)은 이장경의 재능을 간파하고 후세에 반드시 창성할 것이라 예상, 자신의 딸과 혼인하도록 주선하였고 이장경과 부인 합천 이씨 사이에 아들 5명이 태어난 것이다. 

 

  한편, 이장경의 손() 이천년(李千年)의 둘째 아들 이승경(李承慶) 원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지내며 공적을 세우자 원나라 황제가 그의 할아버지 이장경을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하였으므로 농서 이씨라고도 하였다.

 

  원래 이장경의 묘는 성주 월항 선석산에 있었으나 세종대왕 자(아들)의 태를 묻게되자 세종대왕이 특명을 내려 길지를 택해 하사하여, 성주의 서쪽 서오치(西梧峙)의 남쪽인 이곳 성주군 대가면 옥화리 능골로 이장된 것이다.

 

(현재 분파[편집]

밀직공파(密直公派) - 이백년

참지공파(參知公派) - 이천년

시중공파(侍中公派) - 이만년

유수공파(留守公派) - 이억년

문열공파(文烈公派) - 이조년  후손 이갑룡(개명 이창민) (백년설)

 

인구(남한, 1985) : 39,251가구, 183,146

성주군 봉산재 : 성주이씨 중시조인 농서군공(隴西郡公) 이장경(李長庚)이 살았던 옛 집터

 

 

(관련 사진)

 

다음 사진은 백년설 가수(본명 이갑룡, 이창민으로 개명) 외손자 최현진이 2023. 4.18 성주 이씨 유적지를 둘러볼 때 동행인이 촬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매년 음력 10 1일 시조공 시향제례 행사 (사진 2010년 시향제, 전국에서 1,200명 참석)

              (카페 농부 가그린정원 사진 참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