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나의 문예 4

불효자의 고향 추억

성주 산골 벽지에서 태어나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해방되던 그때도 물론이거니와 1960년대에도 내 고향 성주는 문명의 혜택이 없는 거의 순수한 산골 벽지였다. 동쪽은 낙동강을, 남서부 경남 합천군과는 가야산이 경계가 되어 낮은 산들이 군 전체를 둘러싼 분지 형태로 자연환경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2017년 현재 성주군은 45천여 명인데 50년대 우리나라 인구가 2천만이라고 하니 성주도 그 당시로서는 2만여 명라고 추측이 간다. 성주군 성주읍 서쪽하늘 멀리에는 찌를 듯이 솟아있는 짙푸르고 신비로운 가야산이 나타나고 그 산을 바라보면서 대가면소재지를 지나 4㎞를 가노라면 ‘금산리’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그곳이 오늘까지 나를 키워준 고향마을이다. 일본식민지를 벗어나 8・15 해방되던..

나의 문예 2025.05.30

대구•경북의 노래, 고향의 노래

대구•경북의 노래, 고향의 노래 국민의 노래 ‘황성옛터’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계리는 청송 8경으로서 계곡이 수려한 곳이다. 이곳에는 나옹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수정사’ 사찰이 있고 계곡 건너 비탈진 곳에는 낮은 봉분으로 만들어진 무덤이 하나 있다. 2013년 11월 늦가을, 이곳에 옛가요 사랑모임 ‘유정천리’ 전국 회원 20 여명은 낙엽이 내려앉고 바람이 흩날리는 무덤 앞에서 제를 올리고 색소폰 전주곡에 따라 ‘황성옛터’ 옛가요를 합창하였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버레 소래에 말없이 눈물져요...... 1940년 일제 강점기 시절, 나라 잃은 설움을 표현하여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랬던 국민의..

나의 문예 2025.05.28

내 고향 성주 예찬(星州 禮讚)

고향과 관광 사진(일부) 대구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자동차를 이용하면 성주읍에 도착할 수 있다. 대구에서 직선으로 뻗은 달구벌 대로를 지나 달성군 다사읍을 거쳐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성주대교를 통과하여 선남면 다음에 성주읍에 닿는 국도 30호선이다. 또 신천대로를 이용하여 칠곡 지천과 왜관 우회도로를 거쳐 4차선 넒은 도로를 달리다보면 군 경계인 고개를 넘게 되고 성주 월항을 거치는 국도 33호선도 있다. 대구에 인접하고 있는 성주, 내 고향이 옛날에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멀었는가.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성주대교는 없었으며, 왜관과 대구로 가는 길은 월항을 거쳐 높고 험한 재(속칭 다람쥐고개)를 넘어야 되고 차량 두 대가 겨우 통과 가능한 꼬불꼬불한 길 뿐이었다. 낙동강 뱃길은 인근 마을..

나의 문예 202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