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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예

대구•경북의 노래, 고향의 노래

가야돌 2025. 5. 28. 23:15

대구•경북의 노래, 고향의 노래

  국민의 노래 ‘황성옛터’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계리는 청송 8경으로서 계곡이 수려한 곳이다. 이곳에는 나옹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수정사’ 사찰이 있고 계곡 건너 비탈진 곳에는 낮은 봉분으로 만들어진 무덤이 하나 있다.

  2013년 11월 늦가을, 이곳에 옛가요 사랑모임 ‘유정천리’ 전국 회원 20 여명은 낙엽이 내려앉고 바람이 흩날리는 무덤 앞에서 제를 올리고 색소폰 전주곡에 따라 ‘황성옛터’ 옛가요를 합창하였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버레 소래에 말없이 눈물져요......

 

  1940년 일제 강점기 시절, 나라 잃은 설움을 표현하여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랬던 국민의 노래, 일제에 의해 금지곡으로 되어 함부로 불러볼 수도 없었던 그 유명한 ‘황성옛터’(음반명 황성의 跡)를 작사한 왕평(본명 이응호 1908∼1940)이 평안북도 강계에서 무대 감독으로 공연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져 33세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영원히 잠든 곳이 바로 이 무덤이다. 그는 요사찰인물로 추적당하여 일제의 눈을 피해 이곳까지 옮겨와 묻히게 되었고 그 당시의 모습대로 현재까지 보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날 무덤을 찾은 회원들은 정두수 원로작사가, 한국방송인회 안평선 상임부회장, 성공회대 외래교수겸 KBS가요무대 이준희 자문위원, 가요사이트 ‘퐁키’ 김광우 대표, 영남일보 이춘호 기자, 전 서울신문사 문태갑 사장, 하오명 한국다학(茶學)연구원장, 조규석 화가, 박휘봉 조각가, 권혁규 대구세경정밀 대표 등 20 여 명과 함께 필자도 같이 참석하였다.

 

  ‘황성옛터’ 이 노래는 1932년에 이애리수(본명 이음전 1910∼2009) 가수가 불렀는데 음반이 나오자말자 불과 1개월 사이에 5만장이나 팔려나갔다고 한다. 한국인이 첫 번째로 작사 작곡한 대중가요였지만 인기가 높아가자 왜경은 발매금지를 했고 그 당시 금지곡 1호가 되었다. 대구의 한 음악교사가 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치다가 파면된 일도 있었다.

 

  2009년 11월 수정사 부근 왕평의 고향 마을인 파천면 목계숲에 청송군(군수 한동수)에서는 노래비 건립과 진입로 보수, 안내판 설치를 했고, 1년 후인 2010년 10월에는 ‘유정천리’ 회원들이 군수와 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무덤 앞에 작은 표지석을 세웠다. 박휘봉 조각가는 이름 조각을 했다. 이에 앞서 왕평이 태어난 영천시(출생지:영천읍 성내동)에서는 오래 전부터 ‘왕평가요제’를 개최하고 있다. ‘유정천리’는 2010년부터 진주(남인수의 고향), 목포(이난영의 고향) 등 옛가요 주요 유적지를 해마다 답사하고 옛가요를 보전하고 연구하는 단체다.

 

 

이국보다 차가운 ‘나그네 설움’의 한
  일제가 중일전쟁(1937년)을 일으키고 한국인들에게 창씨 개명, 지원병제도 등 노골적인 한민족말살 정책을 시행하여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울분이 절정에 달했던 1938년 12월 어느 추운 날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현 서울 정부제일종합청사 맞은편 소재) 취조실에 끌려간 작사가 조경환(필명 고려성, 김천 출신) 가수 백년설(경북 성주 출신, 1915∼1980)은 일제에 반항하는 요시찰대상 인물로 지목받아 왜경은 온갖 위협과 가혹행위를 하면서 자백을 강요하였다. 밤샘 문초에 시말서를 쓰고 파김치가 되어 이튿날 새벽 차가운 초겨울 광화문 거리에 나온 두 사람은 울분과 서러움이 북받쳤다. 

  몸은 비록 내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이건만 그들은 이국땅에 헤매는 나그네 신세처럼 처량함이 느껴졌다. 백년설은 “형님, 언제부터 낯익은 이 거리가 이국보다 더 살벌해졌습니까?” 그 말을 들은 조경환은 인근 목로주점에 들어가 주인에게 술을 시키고는 자리에 앉아 취조 당한 뒤라 종이가 없어 담뱃갑을 뒤집어서 글을 적었다.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 가야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다.  새벽길 찬서리가 뼈골에 스미는데 ... ”

  이렇게 적은 글이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1절)...로 시작되는 ‘나그네 설움’이란 노래로 만들어지고 1940년 2월 음반으로 제작되어 10만 장이나 팔려 나갔다.(최초 담뱃갑에 적은 가사는 외경의 눈을 피하기 위해 3절로 변경 하였다고 함) 그 당시 SP레코드 1만 장만 팔리면 히트곡이 되었다는데 폭발적으로 인기가 상승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고달픈 삶에 대한 신세타령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일제에 맺힌 한을 읊으며 우리 민족의 가슴을 울려주었던 민족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가수 백년설(본명 이갑룡, 개명 이창민)은 성주 출신(1928년 성주공립보통학교 졸업, 현 성주고등학교)으로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가수와 사업 등으로 활동하다가 1978년에 자식들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투병생활 끝에 1980년 12월 생을 마감하였다. 이외에도 ‘번지 없는 주막, 고향설, 대지의 항구, 산팔자 물팔자, 복지만리, 등 수많은 곡을 불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백년설 가수가 떠난 지 오랜 세월이 흐른 2003년에 백년설추모사업추진위원회 이상희 회장(전 대구직할시장)은 ‘오늘도 걷는다마는’이란 제목으로 백년설 일대기를 발간하였고, 이듬해에는 66곡을 담은 음반을 발매, 2009년에는 백년설노래사랑모임 주설자 회장과 함께 백년설 모교인 성주고등학교에 노래비를 건립 하였으며, 2011년에는 같은 장소에 백년설 음반, 훈장 등도 함께 전시된 성주중고등학교 역사관을 개관하였다. 이때 필자도 이사로 참여하여 힘을 보탰다.

 

대구를 대표하는 노래와 가수

  옛노래 중에서 대구와 관련 된 대표곡으로 먼저 등장 시킨다면 주저 없이 가수 현인 선생이 부른 ‘비내리는 고모령’이라고 할 것이다. 현인 선생(본명 현동주, 1919∼2002)은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운동선수, 성악가, 연주자 등 다재다능한 재능을 보였고 1948년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비내리는 고모령’을 불러 대히트되면서 고모역(1925년 간이역 설립∼2006년 폐역) 인근 고모령이 유명해지게 되었다.

  ‘고모’는 돌아볼 ‘고(顧)’ 어미 ‘모(母)’ 두 글자가 합쳐져 고모령은 ‘어머니가 돌아본 언덕’이라는 뜻이 된다. ‘비내리는 고모령’은 비록 해방은 되었으나 새로운 일터를 찾아 어머니를 두고 자식이 고향을 이별하는 장면을 노래로 나타내었다. 그후 한국전쟁의 엄청난 고통 속에서 같은 비극을 뒤풀이하는 동안 이 노래로 달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텔 인터불고 입구에 노래비가 서 있고 악극단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국민의 노래다.

  특기할 일은 고모역이 대구시가 리모델링사업을 완료하여 철도 역사 관련 자료를 위시하여 현인의 음악자료와 옛가수들이 부른 추억의 가요 등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꾸며져 금년 8월부터 개방하였다는 점이다. 이제는 이별의 아픔을 만남의 장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1971년에 발표한 길옥균 작사 작곡 패티김의 노래 ‘능금꽃 피는 고향’은 지금도 대구시민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다. 2013년 10월에 아양교 근처 금호강변에 노래비가 건립되었는데 준공식 날 많은 시민들이 모였고, 노래 주인공 패티김, 문희갑 전 대구시장도 참석하여 뜻깊은 행사 가 되었다. 또한 주변 소공연장에서 지역사랑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최주원 광복소나무 사랑모임’ 회장이 해마다 아양교 인근에서 ‘능금꽃피는고향 금호강벚꽃길 시민음악회’이란 제목으로 가요제를 개최하여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빨간구두 아가씨’, ‘이정표’ 등 매혹의 저음가수로 유명한 남일해(본명:정태호)는 대구 대건고 3학년 때 특등상을 받게 되면서부터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고, 크게 성공하여 현재까지 40 여년간 300 여곡을 남겼다. 만약 대구와 관련한 멋진 노래도 작사 작곡하여 시민들에게 헌정곡으로 발표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대구의 노래 CD음반 발간

  2015년 3월 대구광역시는 1930년대 유성기 음반시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구와 관련 된 대표곡 40곡을 선정하여 CD음반을 발간하였다. ‘대구+기억-대구테마노래’라는 제목으로 만든 음반집은 영남대 이동순 교수가 기획하여 대구역과 이별이 11편, 고모령 노래 4편 등인데 이별과 슬픔이 담긴 노래가 많고 대구시민의 노래, 대구시 건설행진곡 등의 노래도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 음반은 비매품으로 제작되어 판매되지 않아 널리 확산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2015년 충남 부여군과 부여문화원에서는 ‘부여 가요 대전집’이라는 제목으로 57곡이나 되는 음반집을 발간하였는데 큰 이목을 끌었다.  최근 대구에서도 가수 신유가 ‘수성못 첫사랑’ ‘사문진나루터’를 불렀고 김동아 가수의 ‘갓바위’ 등을 발표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향토출신 가수들의 고향사랑 노래

  수년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나 방송사를 통하여 오랫동안 흘러나온 대중가요 ‘안동역에서’라는 노래는 기성세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생소했으나 차차 귀에 익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었고 이 노래를 부른 진성 가수는 안동역에서 기관단체장들과 시민들이 함께 모여 노래비 준공 테프를 끊는 행운도 가지게 되었다. 만약 노래 제목에 ’안동‘이란 지명이 없었다면 이처럼 폭발력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경산 출신 옛노래 가수 방운아(1930∼2005, 본명 방창만, 예명 초기 방태원)는 경산 출신으로 한국전쟁 전후 대중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서 ‘마음의 자유천지’, ‘인생은 나그네’, 한많은 청춘‘ 등 총 120 여 편의 가요를 발표하였다.

  2010년 10월 경산시 남매지에는 경산시와 방운아노래비건립추진위원회 추진으로 노래비가 세워졌다. 행사 진행은 옛가요 사랑모임 유정천리 회장인 이동순 영남대 교수가 맡았으며 CD음반도 발표하였다.

그 외에 경산과 관련 된 노래로는 전 경산시향우회 김종태 회장이 ‘내고향 경산’을 불렀고 가수 진호는 ‘내고향 진량’을 불렀다.

  최근에는 향토출신 가수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소재로 한 노래를 취입하여 향우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얻고 있다. 필자가 경상북도 각 시군별 향토노래에 대하여 전수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방송과 신문지상을 통하여 알게 된 몇 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조선시대(1658년, 효종 9년) 신유장군 유적지 내에 2014년 10월 1일 지역출신 가수 신유(본명 신동룡)의 ‘시계바늘’ 노래비가 세워졌으며 가수 신유는 칠곡군 홍보대사로 활약하고 있다. ‘고령읍’을 ‘대가야읍’으로 읍 명칭까지 바꾼 후 대가야 문화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고령군에서는 2015년 고령 홍보를 위하여 ‘대가야 연가’ 노래를 제작하였는데 향토 출신 배훈 가수가 불렀다.

  군위군 출신 조은성 가수는 ‘내사랑 군위’와 ‘팔공산아’를 불러 갈채를 받았고 군위사랑 노래비까지 세워졌다. 또한 울진군 후포면 출신 최누리 가수는 ‘내사랑 울진’을 불러 큰 인기를 얻었으며 재경향우회와 각종 행사는 물론, KBS가요무대와 노래자랑에 출연하고 있다.

  예천에서는 작곡가로도 활약하고 있는 김병걸 가수가 ‘예천 머슴아’를 불렀다, 청송군 진보면 출신인 박구윤 가수는 청송명예홍보대사로서 ‘청송으로 오세요’를 불렀고, 주현미 가수도 ‘주왕산’ 노래를 불러 계속 인기가 있으며, 이외에도 다른 가수가 부른 청송가요 여러 곡이 있다고 한다. 2015년에는 청송군 주최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임동창 씨가 ‘청송아리랑’을 창작, 발표하였다.

 

  의성군에도 향토노래 여러 곡 있는데 김병걸 작곡가에 의해 작곡된 ‘의성찬가’(이자연 노래), ‘의성이야기’(제갈송 노래)가 있고 ‘의성을 아십니까’는 오은주 가수가 불렀다.

  2014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토속적인 노래로 ‘꽁당보리밥’을 부른 신일국 가수는 영주 출신으로 본인 스스로 작곡을 한 ‘내고향 영주’를 만들어 발표하였고, 역시 영주 출신 홍인숙 가수도 ‘부석사의 밤’을 불러 좋은 호응을 받고 있다.

 

  영천시에서는 영천 자양에 대한 노래가 눈에 띄었는데 김윤주 씨는 작시(作詩)와 영상 제작, 편곡도 하여 정사공, 박옥재, 정연찬 등 여러 가수가 부른 가요가 있다. 내 고향 성주의 정겨운 노래를 만들자

  이제 나를 낳아준 고향 성주에도 가요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옛가요 국민가수 백년설 이외에 십 여 년 전에 부른 이자연 가수의 ‘참외아가씨’, 최근 정희라 가수가 부른 ‘내고향 성주‘ 노래가 있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곡으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교통발달과 문화관광지로 크게 부상하였고, 대도시에 인접한 전원지역으로 기대되는 내 고향 성주에도 새로운 가요가 탄생되어 확산 된다면 반드시 관광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1936년 ‘대구아리랑’을 부른 최계란

  2012년 12월 5일 ‘아리랑’ 노래가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부터 아리랑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였다. 현재 국내 아리랑 민요는 전국적으로 50 여종이 있다고 한다.

  최계란(본명:최필렬)은 동구 봉무동 181번지에 태어나 10세 때부터 가야금 선생인 강태홍의 지도를 받아 명고수 임종성과 함께 서울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대구아리랑’을 취입하였다.

대구광역시는 경상감영공원 내 대구근대역사박물관에 2010년부터 전시하여 그 음원을 틀어주고 있다. 그리고 2018년 8월 대구 동구 한 단체에서는 ‘대구아리랑노래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노래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정은하 (사)영남민요아리랑보존회 회장은 대구아리랑은 모든 아리랑 중에서도 시기, 가수명, 음반까지 현존하는 유일한 민요로서 지역 특성도 가미되어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하였다.

 

멋진 대구가요를 만들자

  대구에는 박태준과 현재명의 ‘사우(思友)’ ‘희망의 나라로’ 등 최고의 가곡 들이 있지만 발전해가는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대구’라는 지명을 담은 대중 노래를 새로 탄생시켜 대구와 전 국민들의 애창가로 반드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은 분명히 금호강과 낙동강시대를 맞이하고 있지 아니한가. 대구광역시와 구,군에서는 ‘금호강’이란 브랜드를 속히 확보하여 음악의 도시답게 대중화하고 승화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서거정이 읊은 ‘대구 십영’ 중 ‘침산의 노을’을 대변하는 금호강의 역사와 대구 사랑을 담은 가사를 만들고, ‘금호강 사랑’, ‘금호강의 찬가’ 등으로 꾸며진 노래가 대구는 물론, 전 국민이 애창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 노래가 실화로 변하게 되고 전설로 이어져서 미래 문화를 창조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2018년 대구동우회지 투고 작품)

 

가수 백년설 사진(일부)

백년설, 심연옥 특집 가요무대(2013.7.5)
가수 백년설 음반
백년설 노래비(성주고등학교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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