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나의 문예

논길 옆에 쉬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2026년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바침

가야돌 2026. 9. 20. 18:39

논길 옆에 쉬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2026년 추석 명절을 앞두고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바침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1980년대 중반의 어느 늦가을이었습니다. 2의 고향인 경북 칠곡 지천면 연화동, 먼저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던 길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오랜만에 대구 자식 집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연세는 이미 여든을 훨씬 넘기셨고,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했던 남편의 묘소가 그리워 성묘 길을 청하셨던 것입니다. 낡은 엘란트라 운전대를 잡고 국도를 따라 달렸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대구로 향하던 옛길이자, 어머니께서 성주에서 농사를 지으시다가 1960년대 초 칠곡 연화동으로 이사 오신 후 대구를 오가시던 추억이 서린 길이었습니다. 혹여 오래된 차가 고속도로에서 고장이라도 날까 싶어 국도변으로 가는 날은 늦가을 참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던 때였습니다.

 

  마을을 벗어나 바람 몰아치는 언덕 오솔길을 30분 넘게 걸어 올라가야 했던 아버지의 산소.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던 길,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고단하셨던지 논길 옆 길가에 가만히 앉아 쉬고 계셨습니다. 억새와 시든 풀밭 사이에 지친 몸을 얹고 먼 산을 바라보시던 어머니. 백발이 성성한 그 허전하고 작은 뒷모습이 안쓰러워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날의 그 뒷모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리움이 밀려올 때마다 꺼내 보는 나의 소중한 마음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가만히 입안으로 그 이름을 불러봅니다.

   생전의 어머니 삶은 자식들을 위한 끝없는 희생 그 자체였습니다. 칠곡에서 농사를 지어 수확한 감과 곡식을 머리에 이고 십리 길을 걸어 신동역으로 가셨던 어머니. 대구역 번개시장에 전대를 차리고 그것들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삼 남매의 뒷바라지를 해주셨습니다. 먼 훗날 누님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는 지금도 가슴을 찢어놓습니다. 늦가을 홍수로 물에 잠긴 대구역 철길을 건너시다 넘어져 몸을 다치시고도, 물에 떠내려가는 감들을 줍지 못해 흙탕물 속에서 눈물만 흘리셨다던 그 서러운 이야기...

 

  어머니뿐만 아니었습니다. 자식이 베트남 전선에서 2년 동안 사선을 넘나들 때, 아버지는 초하루와 보름마다 목욕재계하시고 아들이 있는 남쪽 하늘을 향해 조상님께 아들의 무사 귀환을 빌고 또 비셨습니다. 전쟁터에서 누님의 편지로 그 소식을 접하고 멀리 고향을 바라보며 울먹였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서울 출장길에 잠시 형님 댁에 들렀다가 서둘러 서울역으로 향할 때면, 어머니는 떠나는 택시 창문 안으로  손수건 뭉치를 던져 넣어주곤 하셨습니다. 택시 뒷창문으로 돌아보면 앞치마로 눈물을 닦고 계시던 어머니. 그 손수건 안에는 자식 쓰라며 아껴 모으신 10, 100원짜리 동전들이 한 웅큼 들어있었습니다.

 훗날 서울 병원에서 투병 중이실 때, 2~3개월 만에 겨우 찾아뵌 자식에게 "왜 이제야 왔느냐"며 서운해하시던 어머니의 그 말씀에 아무런 대답도 드리지 못했던 못난 불효자였습니다.

 

  이제 저도 어느덧 여든을 넘긴 나이가 되었습니다. 2026년 추석 명절이 눈앞으로 다가옵니다. 창밖으로 차분하고 따스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오늘 오후, 다시금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향해 절을 올립니다.

 

   "부모님, 못난 이 아들도 이제 두 분을 뵈올 날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되면 다시 만나 못다 한 효도를 다 하며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또한 그곳에는  저를 아는 조상님들과 친척, 그리고 먼저 간 꽤나 많은 친구들이 반갑게 맞이해줄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경주 불국사에서 자식들을 위하여 두 손 모아 빌고 계시던 또 다른 사진 한 장에 담긴 이야기는 추석 후 다시 풀어보겠습니다.)

평생 가난과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경북 칠곡에서 촬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