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상륙작전 개요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1950년 9월 14일 대부분 학도병으로 구성된 육본 독립 제1유격대대 772명이 북한군 후방 교란과 7번 국도 보급로 차단에 성공한 양동작전이다. 상륙 당시 태풍 ‘케지아’의 영향으로 악천후 속에서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 해안으로 어렵게 상륙한 부대원들은 엿새간 전투를 벌여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하는 등 큰 희생을 치렀다.
1950년 9월 14일,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면 앞바다.
아직 수염도 제대로 나지 않은 열여섯에서 열아홉 살 학도병 772명이 배에서 내렸다.
교복 대신 군복을 입고, 연필 대신 소총을 들고, 교과서 대신 조국을 가슴에 안고.
그들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장사상륙작전’이라는 가장 위험한 길을 스스로 택했다.
적의 기관총이 불을 뿜는 해변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772명의 발걸음이 모래사장을 울릴 때, 그 소리는 “조국이 위험하다”는 한마디로 충분했다.
단 며칠간의 전투. 139명이 그 자리에서 영원히 잠들었고,
수많은 아이들이 피 흘리며 쓰러졌으며, 또 수많은 아이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이름 모를 소년들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장사리 전적기념관의 명패 한 귀퉁이에는 빈 공간이 남겨져 있다.
언젠가 그 이름이 돌아오기를, 아니, 그 이름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의 빈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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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아끼지 않고 조국을 사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장사 해변에 첫 파도를 밟은 어린 학도병들이 이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진정 님들은 위대한 영웅입니다.
만약 우리가 아무런 떨림 없이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면, 그건 우리가 아직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라는 증거일 것입니다.
저기 저 바닷가를 보십시오.
1950년 9월의 포화 속에서 “엄마… 아빠…” 하며 울부짖던 소년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파도에 실려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날의 함성, 그날의 피, 그날의 눈물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배가 침몰하면 모두가 바다에 혼이 됩니다.
그러나 그날 장사 앞바다에 침몰한 배는 단 한 척도 없었습니다.
소년들이 몸으로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용사님들이여.
이름이 새겨진 님도,
이름이 새겨지지 못한 님도,
이 늦은 후손은 가슴 깊이 새깁니다.
진정 감사합니다.
진정 고맙습니다.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하늘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시며
오늘의 우리가 게으름과 안일함에 빠지지 않도록
조국이 다시는 피 흘리지 않도록
이 나라가 거침없이 진전하여 번영의 길로 나아가도록
끊임없이 수호해 주십시오.
장사리 해변에 선 오늘,
772명의 소년들이 다시 내 가슴에 내려와
“조국을 지켜라”고 속삭입니다.
그 목소리에 대답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님들이 피로 지킨 이 땅,
우리가 목숨으로 지키겠습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감사하겠습니다.
영원히, 조국과 함께하겠습니다.
1950년 9월 장사리에서 산화하신 학도의용군 영령들께 이 후손,
머리 숙여 삼가 명복을 빕니다.
대구시행정동우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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