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각종 모임/대구시행정동우회

대구광역시행정동우회 도동서원 문화답사

가야돌 2025. 9. 28. 20:19

 

 

 

단체 기념 촬영
도동서원 전경(사진 출처 : 달성군 제공)
도동서원 전경(자료 : 대구광역시, 홍보지 캡쳐)

 

  도동서원(道東書院)은 앞으로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로는 대니산을 배경으로 자리해 있으며, 다람재에서 나려다보면 그 정경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서원은 원래 조선오현(朝鮮五賢) 중 수현(首賢)이신 신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 하기 위해서 건립한 서원으로 1568년 유림에서 현풍 현 비슬산 기슭에 사우(祠宇)를 지어 향사를 지내오다가 1573년 쌍계서원(雙溪書院)으로 사액되었으나, 1597년 왜란(倭亂)으로 전소되었다.

  그 후 1604~5, 2년간에 걸쳐 지금의 자리로 사우를 옮겨 짓고 서원일곽을 재건하여 보로동서원으로 부르다가, 1607년에 도동서원(道東書院)으로 재사액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전국에 서원철폐령(1871)을 내렸을 때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주요서원 중의 하나이다. 도동서원은 산지형 서원의 배치형태로 유식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밖에 신도비, 유물전시관. 전사청, 증반소 등이 있다. 유식공간에는 외삼문과 누각인 수월루(水月樓), 강학공간 내에는 강당인 중정당(中正堂), 동재인 거인재(居仁齋), 서재인 거의재(居義齋), 장판각 등이 있으며, 제향공간에는 사당(祠堂)이 있다.

  강당과 사당, 그리고 담장이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서원 전역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강학 공간 출입문인 환주문은 그 구성이 특이하다.

중정당(강당 : 강학 공간)

강당(講堂)

  도동서원의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은 강학 공간으로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정면 5, 측면 2칸의 주심포 기둥에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이다.

  좌·우 앞퇴가 있는 한 칸씩은 온돌방 이고 가운데 3칸은 앞면을 개방한 대청이다. 강당의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 그리고 갑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단의 갑석 바로 아랫단 면석 사이에는 여의주와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머리 4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다람쥐 모양의 길함을 나타내는 동물상과 상서로운 꽃문양이 좌우 면석에 조각되어 있다. 이 기단은 높이가 무려 150cm에 이르러 강당의 위용을 한층 드높이고 있다.

 

뜻풀이 주심포: 기둥머리 바로 위에 얹은 공포

             공 포: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은행나무

  '김굉필 나무'라고 명명되어 보호하고 있으나, 실제 심은 사람은 조선 중기 성리 학자인 한강 정구 선생으로 도동서원이 사액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식수한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남인 예학의 대가로 알려진 한강 선생은 학문적으로 대선배이자 외증조부이기도 한 한훤당을 제향(祭享)하는 서원 전립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담장(사진 출처 : 대구시 홍보지 사진 캡쳐)

 담장

  담장은 자연석을 정렬시킨 지대석 위에 자연막돌을 쌓고 그 위에 암키와를 5단 으로 줄 바르게 놓아 그 사이에 진흙층을 쌓아 올리고 1m 간격으로 수막새를 어 갈리게 끼워 넣었다. 담장에 암키와와 수막새를 사용한 것은 음양의 조화를 통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장식효과를 최대한 살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토담의 모 습이 매우 아름다워 전국에서 최초로 보물로 지정(1963년)되어 있다.

 

수월루(水月樓)

  수월루는 도동서원의 정문격인 외삼문과 일종의 여유 공간인 누각으로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유생들의 휴식처나 교류 공간으로 사용 되었으며, 누각에 올라서면 동북쪽에서 흘러오는 낙동강과 고령 개진면 일대의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환주문 : 환주문에서 강당으로 올라가는 건축물의 선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환주문이란 '주인을 깨우는 문'이라는 뜻

  수월루, 환주문, 중정당(강당) 등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이유

  도동서원은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을 따르며, 수월루(정문 누각), 환주문(주인을 깨우는 문), 중정당(강당) 등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이유는 유교의 '전학후묘(前學後廟)' 원리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는 '앞에 배움의 공간(학당), 뒤에 제사의 공간(사당)'을 두어 학문 수양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서원의 기본 구조를 반영한 설계로, 도동서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선 서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특히 환주문 중앙에서 중정당의 현판(퇴계 이황의 친필 '道東書院')이 똑바로 보이도록 한 직선 배치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입구에서부터 서원의 중심(학문과 제향의 상징)까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의도된 것이다. 이는 방문자가 문을 통과하며 '내 안의 주인(천성)을 깨우라'는 환주문의 의미를 상기하고, 곧바로 중정당의 현판을 마주하며 학문적 각성을 촉구하는 상징적 효과를 준다. 유교 건축에서 이런 직선 축선은 조화와 질서, ()의 직진성을 나타내는 풍수지리적·의례적 원리이기도 하며, 도동서원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더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이 배치 덕분에 도동서원은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서원의 자부심을 시각적으로도 강조하는 공간이 되었다. 만약 현장에서 이 직선을 따라 걸어보면, 그 조화로운 흐름이 유교 사상의 본질을 새삼 느끼게 할 것이다.

 

은행나무 세부 설명

  도동서원의 400년 수령 은행나무(정확히는 약 440년으로 추정)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서원을 중건한 김굉필의 외증손 한강 정구(한강, 1543~1620)가 선조 37(1604) 중건 직후 또는 40(1607) 사액 승격 기념으로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나무는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서원의 부흥과 조상의 학문·덕행을 기리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별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중건 기념과 영속성의 상징이다. 임진왜란으로 쌍계서원이 불타 사라진 후 정구가 낙동강변 지금의 도동리에 재건한 것은 김굉필의 '소학동자' 학통을 이어가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은행나무는 장수와 불굴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나무로, 중국 고전(: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설화)에서 유학 교육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정구가 이 나무를 심음으로써 서원의 부흥을 영원히 새기고, 후세에 김굉필의 도() '동쪽으로 왔다'는 도동서원의 사명을 기리는 '살아 있는 기념비'로 삼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이 나무는 '김굉필 나무'로 불리며, 서원 입구를 지키는 수호수 역할을 해왔다.

 

  둘째, 유교적 겸허와 조화의 표현이다. 은행나무는 수양(修養)과 장수의 상징으로, 서원 건축에서 배움의 공간을 상징하는 나무로 자주 식재되었다. 정구가 외증조부 김굉필의 후손으로서 중건을 주도한 만큼, 이 나무는 그의 개인적 헌신(존경과 후계 의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무의 구불구불한 가지와 낮은 자세는 선비의 절개와 겸손을 연상시키며, 가을 노란 잎은 서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자부심을 화려하게 드러낸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2019) 후 이 나무는 서원의 랜드마크로 더 부각되며, 보호수(대구시 8-2)로 관리되고 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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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 16, 대구행정동우회에서 '도동서원 문화답사 사진 공개

도동서원 문화답사 단체 사진 촬영(2019. 8. 16) : 이하 모든 사지은 그 당시 촬영한 사진
중정당에서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경청

 

중정당에서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경청
회원들 수월루(누각)를 거쳐 중정당(강당)으로 올라감
수월루 현판
수월루 세 개의 문 중 왼쪽 문으로 통과
수월루 이층 누각
환주문 입구
환주문 안쪽에서 수월루를 바라본 광경
중정당(강당)
사당(사진 출처 : 인터넷)
사당(祠堂)

  사당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위패와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신 제향 공간 이다. 정면 3, 측면 3칸의 주심포기둥에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 정면 3칸 에는 칸마다 밖여닫이 널문을 달았고 내부는 통칸으로 틔웠다. 정구 선생은 서원 건립 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유품 정리할 때의 공헌을 인정해서 1678년 추가 배향 하였다. 향사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지내고 있다.

도동현판 2개 : 중정당 처마 밑 검은 바탕에 흰 글씨, 나무색 바탕에 검은 글씨
도동서원 현판(검은 바탕의 백색 글씨)

조선 중기의 문신인 모정 배대유(1563~?)가 쓴 것으로 전해짐. 이 현판은 선조가 하사한 사액현판으로, 도동서원이 사액서원으로 지정되었음을 나타냄

도동서원 현판(나무색 바탕에 검은 글씨 현판 ) :

퇴계 이황 선생의 글씨를 집자하여 모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 이황의 서체를 바탕으로 새긴 모각(模刻) 현판

 

나무색 목판에 검은 글씨

  자연 나무색 배경에 검은색 먹으로 쓰인 전통적 현판이황(퇴계) 선생 (조선 중기, 1501~1570)'중정당(中正堂)' 현판. 이황 선생의 친필을 집자(摹刻, 모사하여 새김)한 것으로, 서원의 강학 공간인 중정당을 상징한다. 이황 선생은 도동서원의 배향 주인 김굉필 선생을 높이 평가하며 서원 이름 '도동(道東)'의 기원을 마련한 인물이다.

 

검은색 목판에 흰 글씨

  검은색 도장 배경에 흰색(백호)으로 쓰인 현판배대유(모정) 선생 (조선 중기, 1563~?)'전교문(傳敎文)' 또는 관련 학칙 현판. 배대유 선생의 친필로, 선조 임금의 사액(賜額)과 관련된 서원 학문 규범을 기록. 배대유 선생은 조선 중기 유학자로, 도동서원의 재건과 학문 전파에 기여했다 (정보 출처: 국가유산청청 국가유산포털 및 도동서원 관련 학술 자료)

중정당 마루에서 정면을 바라본 모습
중정당 마루 끝에서 정면을 바라본 모습
거인재(상) 거의제(하) (사진 출처 : 인터넷)

 

거인제 (동족에 있는 유생들의 학문 공간)
거의제 (서쪽에 있는 유생들의 학문공간)
신도비(쌍귀부) (사진 출처 : 인터넷)

  귀부는 비의 몸돌을 받치고 있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을 말 하는데, 머리가 2개인 것을 쌍귀부라 한다. 현재 국내의 쌍귀부들 중, 4기는 신라시대의 사찰유물로서 비의 몸돌과 머릿돌은 사라지고 받침돌인 쌍귀부만 남아 있다. 이에 비해 도동서원 신도비의 쌍귀부는 국내 유일의 조선시대의 쌍귀부이며, 불교사찰이 아닌 유교서원의 비석이고, 온전한 형태 를 갖추고 있는 국내 유일의 쌍귀부이기도 하다..

담장 : 전국 최초로 보물 제 350호로 지정(1963. 1. 21) (2019. 8.16 촬영)

   이 담장은 전국에서 토담이 보물로 지정된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로, 조선 중기의 전통 건축기법과 음양의 조화를 살린 아름다운 구조로 평가받고 있다. 자연석 위에 막돌을 쌓고, 그 위에 암키와와 수막새를 교차 배치한 독특한 방식은 장식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지닌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이 지정은 단순한 건축물 보호를 넘어, 서원의 역사적·학문적 가치와 조선 건축미의 정수를 인정받은 사례로 볼 수 있어요. 도동서원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이와 같은 문화적 깊이 덕분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