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흥마을
고려말의 충신 문익점의 18세손 문경호가 19세기 중엽 터를 잡아 만든 마을로 현재 조선말기의 전통가옥 9채와 재실 1채, 정사 1채, 문고 1채가 들어서 있다. 정전법 구도로 형성되었으며, 대가족 생활양식의 전형을 볼 수 있는 이 마을은 잘 보존되어 지금은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 어 있다. 마을의 대표 건물로는 광거당과 수봉정사 그리고 인수문고를 들 수 있고, 또한 세거지 맞은편에는 1866년에 세워진 인흥서원이 고즈넉하 게 자리하고 있다.
남평문씨의 중시조로 알려진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후손이 대구에 입향한 것은 대체로 500여 년 전으로 전해 지고 있으며 이곳 인흥에 자리를 잡은 것은 그의 18세손인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敬鎬, 1812~1874) 때이다. 그는 문씨 만의 마을을 만들 것을 계획하고 원래 고려의 대찰(大利)인 인홍사가 있던 자리에 터를 잡아 오늘의 인흥마을을 새로 열었다고 한다.
세거지에 최초로 건립한 건물은 1830년을 전후에서 지은 재실 용호재(龍湖齋)로 현재 광거당이 있는 곳이다. 저택이 들어선 것은 1800년대 후반으로 처음에는 초가로 시작했으나 그 후 100년에 걸쳐 지금의 세거지가 형성되었다. 현재 10여 채의 기와집이 한울 안에 정연히 들어서 있는 이 마을은 건축 연대가 200년 미만이지만 전통적인 영남지방 양반 가옥의 틀을 지키고 있으며, 세거지 구성과 주위 경관의 조화는 어느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마을이라 하겠다.
(안내문 자료 출처 : 대구광역시 제공, 이하 동일)
문익점(文益漸, 1331~1400)
본관은 남평(南平),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1363년 좌정언(左正言)으로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元)나라에 갔었다. 돌아올 때 붓대(筆管) 속에 목화씨를 감추어 가져와, 경남 산청군의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함께 시험재배를 하였으며, 3년 간의 노력끝에 재배에 성공하여 전국에 목화씨가 퍼지도록 하였다. 1440년 세종이 영의정을 추증하고 강성군(江城君)으로 추봉했다
목화밭
보통 한해살이 풀이지만 작은 관목형태도 있으며 꽃이 지고 생긴 꼬투리가 익어 터지면서 솜이 보이는데 털은 모아서 솜을 만들고 종자는 기름을 짠다.
인수문고(仁壽文庫)
2만여 권의 국내외 전적(典籍)과 문건 등을 수장하고 있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문중문고(門中文庫)이다. 차츰 규모가 커지게 되자 1982년에 서고를 새로 지으면서 명실공히 민간의 대표적인 문고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소장하고 있는 책들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백당(守白堂)[수봉정사]
문중 자제들의 배움터이자 학문을 논하던 곳으로 지금도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하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세거지 정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1936년에 수봉 문영박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몇 집 되지 않는 마을에서 이 정도 건물을 지었다는 점에서 마을 조성 당시 문중의 경제력과 규모를 유추할 수 있다
문영박(文永樸, 1880~1930)
인흥에 터를 잡아 마을을 세운 문경호의 증손으로, 학자이며 경륜가로 명망이 높다. 수만의 전적(典籍)을 모아 학문 진흥에 이바지하였으며, 조국의 광복운동에도 크게 기여해 오늘의 세거지를 있게한 중추적 인물이다. 돌아가신 후에는 상해 임 시정부로부터 대한국춘추주옹(大韓國春秋主翁)으로서의 조문(文)도 있었다.
담장
마을을 하나로 이어주는 골목 담장은 돌담이나 꽃담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장이 높고 흙과 돌로 정성스럽게 쌓은 모습이 눈길을 끈다. 하나같이 시원하고 웅장한 모습인데, 이는 외부와 차단하는 의미보다 사생활을 보호하며 공간을 나누는 것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낙낙장송 저 소나무, 방문할 때마다 고개 숙여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있다. 반갑고 감사합니다.......
인흥원
마을 입구에 자리한 연못으로 마치 경주의 안압지를 연상케한다. 특히 해 질 무렵 연못에 반영되는 소나무와 고택 풍경을 찍기 위해 전국의 사진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인흥원의 연꽃 (2023, 6. 29) 과 담장의 능소화 (2024.7.5)
















해마다 아름다운 전통마을 방문면서 오늘 이 글을 남깁니다.
대구 달성군 인흥마을: 역사와 전통의 살아있는 숨결
500여 년 전, 남평문씨 조상들이 대구 달성군 인흥마을에 터를 잡아 그 유산을 오늘날까지 굳건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문익점 선생은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백성들에게 따뜻한 옷을 입히는 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의 동상 주위에 심어진 목화는 오늘도 하얗게 피어나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순수한 아름다움과 기쁨을 선사합니다. 또한, 문영박 학자를 비롯한 선조들은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며 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문중의 빛나는 역사는 2만여 권의 귀중한 서적으로 고스란히 보존되어 후세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흥마을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마을을 에워싼 푸른 산과 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보호림, 인수원의 고고한 연꽃과 노송, 그리고 많은 꽃들로 향기가 항상 가득합니다. 또한 담장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능소화는 계절마다 다채로운 풍경을 자아냅니다. 봄이면 벚꽃이, 여름이면 연꽃이, 가을이면 단풍이, 겨울이면 옛 고향 같은 아름다운 설경이 방문객을 맞이하며, 자연과 전통의 조화는 깊은 감동을 안깁니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들과 사진작가들은 이곳에서 끝없는 영감을 얻고, 가슴 깊이 간직할 추억을 안고 돌아갑니다.
도시의 삭막함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이곳 인흥마을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쉼터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자연의 품 안에서 숨 쉬며, 고향의 정취와 뿌리의 소중함을 되새깁니다. 나라와 지역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삶의 가치를 되찾는 여정이 이곳에서 펼쳐집니다. 필자는 뜻있는 일행들과 해마다 이 마을을 찾아 옛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큰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도 이곳에서 받은 깊은 감동과 고마움을 담아 이 글을 남깁니다.
인흥마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져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성찰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우리의 뿌리를 되새기고, 삶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여정을 여러분도 함께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각종 모임 > 대구시행정동우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구광역시행정동우회 도동서원 문화답사 (2) | 2025.09.28 |
|---|---|
| 송해공원에 가면 송해 선생을 만날 수 있다 (0) | 2025.09.28 |
| AI에게 두 번째 질문, 고령자에게 위로의 명문장(名文章)과 명언(名言) 요청 (7) | 2025.07.17 |
| 5. 동우회 124차 정기 이사회 개최 겸 문화유적 탐방 - 합천 해인사(2) (6) | 2025.07.13 |
| 4. 행정동우회 124차 정기 이사회 개최 겸 문화유적 탐방 - 해인사(1) (0) | 2025.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