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바람을 거역하여 사방으로 번진다.

방명록/자유게시판

담이와 여름이

가야돌 2017. 10. 16. 14:33

담이와 여름이 

                                                                                 필봉 최 해 량

 

  추석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씻을 겸 온천을 찾았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도 아니고 집에서 가까워 동네 목욕탕처럼 드나드는 곳이다. 고개를 넘어 ○○전적 기념관앞을 지나는데 눈길을 끄는 현수막 하나가 보였다.

호국 영령 잠든 곳에 동물 장례식장이 웬 말이냐!’

  동물 장례식장을 지으려고 신청한 것을 못마땅해 한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이다. 자기 동네에 장애인 학교나 요양원이 들어오는 것도 결사반대하는 게 요즘 인심이다. 그런데 동물 장례식장이라니! 주민의 관점에서야 당연히 할 수 있는 주장이겠지만 그래도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든다.

  예전 같으면 죽은 동물의 사체는 야산에 버리거나 매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동물보호법과 관련 규칙은 일정한 시설을 갖춘 동물장례업자에게 의뢰하여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구에는 동물 장례식장이 없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동물의 수가 만만치 않을 터인데 그 처리를 어떻게 할까? 생로병사는 자연의 순리인데 애지중지 기르던 반려동물이 죽으면 마지막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공원이나 강변 둔치를 걷다 보면 많은 사람이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한다. 명실공히 애완견 시대가 되었다. 하루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숑을 안고 있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참 비싼 개를 기릅니다.’ 아는 척하며 인사를 건넸더니 동물병원에서 막 퇴원하는 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입원비가 몸값만큼이나 많이 나와서 남편의 눈치를 잔뜩 보고 있다고 묻지 않는 말까지 덧붙였다. 예전에는 집이나 지키던 동물로 여겨지던 개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다. 신분 세탁을 잘하여 인간의 영역에 진입하더니 가족 서열도 수직상승 했다. 숫자도 급속히 늘어나 곧 천만 시대를 바라본다고 한다. 종류도 다양해져 고양이는 물론 거북이, 악어 심지어 뱀까지 기르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호칭해야 한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고향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친구 집을 찾았다. 잠자리가 바뀌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잠드는 시각이나 생활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편치 않다. 그래도 어린 시절 함께 뒹굴고 지내던 때를 추억하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으니 얼마나 큰 기쁨인가. 그 행복을 좇아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아가는 친구 집을 찾았다. 그런데 큰 방 한쪽에 시츄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매우 지친 모습에 병든 기색이 역력했다. 친구는 이 녀석이 담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열여섯 해를 가족들과 함께 애환을 같이해 왔다고 했다.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녹내장으로 왼쪽 눈을 적출했고 오른쪽도 눈도 백내장으로 겨우 뜬다고 했다. 달팽이관 이상으로 잘 듣지도 못하고 심장병이 있어 몇 가지 약을 먹는다고 했다. 영락없이 죽음을 앞둔 노인이었다.

  그런데 병든 녀석을 안은 친구의 모습이 삼대독자 손자를 안은 할아버지와 흡사했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듯이 편안한 모습으로 안아 주었다. 아무리 바쁜 일을 하다가도 배변할 시간을 알아채고 얼른 마당으로 데려나갔다. 예전의 친구의 사고로는 턱도 없는 소리다. 개는 개같이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던 친구가 아니던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묘약이 있어 동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이 이렇게 애완견 바보가 되었을까?

하루는 퇴근하니 아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앓고 있었다. ‘병원에는 다녀왔느냐? 엄마는 어디 갔느냐?’ 묻고 있는데 친구의 아내가 담이를 안고 들어왔다. ‘아들이 이렇게 아픈데 병원에는 안가고 어디를 다녀오느냐?’ 는 물음에 담이가 아파 동물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 아이가 아픈데 개를 먼저 데려갔다고?’

  ‘아들은 아프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담이가 말도 못하니 얼마나 괴롭겠어요.’ 아내의 말에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담이에 대한 관심이 적던 친구가 담이 바보가 된 것은 한쪽 눈을 적출하고 부터라고 했다. 병들고 늙은 애완견을 보니 저절로 측은지심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담이는 참 복된 주인을 만났다.

 

   여름이는 ○○공소의 개로 푸들이다. 친구의 지인인 신부님은 황무지와 같은 곳에 공소를 정비하고 주변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한 분이다. 은퇴 이후에도 공소를 지키며 신자들의 영혼을 돌보는 영안이 열린 분이라고 친구는 입이 닳도록 말한다. 그 분은 개를 그렇게 귀여워하지 않아서 공소 마당이나 지키는 딱한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던 푸들이 담이 바보’, ‘측은지심 바보를 만난 이후 신세가 달라졌다.

어느 여름 날, 신부님과 월포 해수욕장에 갔다. 수영도 잘하지 못하는 친구가 제법 수심이 깊은 곳까지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푸들은 자기 주인의 손님이 물에 빠진 줄 알고 막무가내로 헤엄쳐 이 친구에게로 왔다. 컹컹 소리 내어 위급함을 알리며 들어온 것이다. 이에 감동한 친구는 푸들을 부등켜 안고 막 울었다고 한다. 주인도 아닌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고 물로 뛰어든 푸들, 이제 이 두 사람은 떼어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 이후 푸들의 이름은 여름이로 바뀌었다. 그 친구가 차를 몰고 공소로 가면 언제 왔는지 거의 1km 가까운 거리를 따라와 주인이나 된 듯 마루 밑에 버티고 앉는다고 한다. 그리고 들고양이들에게 주는 먹이를 독차지하며 이제는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 다시 그 친구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방을 지키던 담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이냐는 물음에 친구는 풀죽은 목소리로 죽었다고 했다. 고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고통 속에 괴로워하다가 죽었다고 했다. 담이의 유체는 서울에 있는 아들 내외와 딸과 사위까지 내려와 온 가족이 슬퍼하며 정원 매화나무 밑에 안장했다. 안방을 지키던 담이는 이제 집을 지킨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가장 먼저 듣고 반긴다. 반갑다고 꼬리를 치며 대문으로 달려오지는 못하지만 마음껏 큰 소리로 짖어댄다.

  담이 바보는 소중한 가족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추억이 가물거릴 때쯤이면 정원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매화꽃의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담이와 즐거웠든 시간들을 되살릴 것이다.

     BGM : 자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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